황태자비 후보들이 불려가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한 그 황후 침전에 이 사람이랑 나를 왜 부르시는 걸까.
혹시 그 잘못된 소문 때문인가?
혹시라도 우리가 황태자 전하께 수도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는 희망을 내비쳤다고 오해하신 건?
허둥거리다가 제때 대처하지 못한 것이 자신의 잘못 같았다.
일부러 황태자비를 고르고 계신 곳으로 불러 조용히 한마디 하시려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레이나는 전전긍긍했다.
최근 며칠 사이에 레이나에게는 여러 일이 정신없이 일어났다.
신문을 보고 깜짝 놀라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결혼식 정해졌다며 왜 저희는 초대 안 해 주시냐, 서운하다는 말을 듣고,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아니라고 해명한 다음 라이아네 왕녀를 만나고.
그래도 어제까지는 모든 것이 아직 손안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황후가 부른다고 해서 허겁지겁 달려오니 뭔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예, 황후 폐하. 그럼 말씀하신대로 의논해 보겠습니다. 배려해 롤베팅롤배팅 감사합니다.”
아서가 단정하고도 차분하게 마리아에게 대답했다.
“…….”
레이나는 멍한 기분으로 황후 마리아의 인자한 미소를 바라보았다. 분명 정신은 바짝 차리고 있는데 뭔가 얼떨떨했다.
그래도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며 입은 적절한 대답을 내놓고 있었다.
“황송합니다.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황후 폐하.”
화장기 없는 얼굴에 환자의 옷차림으로 둘을 마주한 마리아가 다정하게 웃으며 말했다.
“별말씀을요. 저야말로 저의 억지를 들어 줘서 고마워요. 두 사람도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을 텐데 내가 무리한 부탁을 한 건 아니었으면 좋겠군요.”
아서가 미소로 대답했다.
“당치않습니다.”
황후의 입에서 결혼식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냥 눈치 보지 말고 하라는 거였다.
레이나는 얼떨떨하게 둘이 대화하는 것을 바라보며 근래 있었던 일들을 되짚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될 흐름이었던 거지?
· · ·
일주일 사이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몇몇 일들이 있었다.
교황이 어떤 성인의 축일을 지정하며 그동안 사정이 있어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사람들이 결혼식을 올리기에 적합한 날이라고 권유했다.
그 날짜를 검토한 황실은 그동안 여러 사정으로 혼인식을 올리지 못하고 살던 사람들이 있으면 결혼식을 올리라, 황실이 축복하고 사정을 덮어 주겠다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레이나는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오 년 동안 귀족들의 혼인이 금지되어 그사이 금혼령을 깨고 몰래 혼인을 한 사람들이 없지 않은 탓에, 황실이 길게 이어진 금혼령에 나름의 너그러움을 보이며 양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거라는 평이 중론이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은 처사라 생각했다. 황실은 계속 귀족의 문턱을 낮추며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려 하고 있었으니.
얼마 후 줄리어스 대주교가 한번 아서와 레이나의 집을 찾아와 차를 한 번 스타베팅롤드컵토토 돌아갔는데,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라이아네 왕녀가 둘의 결혼식에 초대받았다더라,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도 초대받았는데 쉬쉬하고 있다더라 하는 이야기가 신문에까지 나며 일파만파 퍼지기 시작했다.
소문의 발원지를 찾아보니 라이아네 왕녀의 인터뷰 도중에 새어나간 이야기였다.
라이아네 왕녀는 살리아와 제국이 체결한 종전과 화친의 협정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그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으며 제국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어필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카일 황태자가 귀국을 권했지만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며 건강하다는 인터뷰를 하는 것이나, 레이나와 가깝게 교류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은 그 일환이었다. 참모인 케이 포드와도 합의가 된 이야기였다.
하지만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나눈 적이 없었다.
레이나가 따로 라이아네 왕녀를 찾아가서 물어보니 인터뷰 도중 왕녀가 레이나와 종종 티타임을 가지며 잘 지낸다던데 결혼식을 한다는 것을 들었냐며 지나가듯 나온 질문이라, ‘아, 결혼식 다시 한다고 들었다, 물론 기쁘게 축복할 것이다.’ 대답한 것인데, 마치 결혼식에 초대받기라도 해서 참석하기로 한 것처럼 헤드라인이 뽑혀 기사가 난 것이었다.
왕녀는 주례를 맡아 줄 주교가 그대에게 다녀가 그 날짜로 둘이 수도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확정된 것인 줄 알았다고 하며, 카일 황태자의 이야기도 있어 자신이 오해를 한 모양인데, 혹시 레이나를 곤란하게 했느냐고 당황했다.
그리고 그제야 레이나는 카일 황태자가 황태자비 후보들에게 그들의 결혼식을 수도에서 롤토토스타토토 해 줄 방법을 물었다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바빠서 신경 쓰지 못했던 자신의 결혼에 대한 소문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었다.
레이나는 카일 황태자가 그렇게까지 마음 써줬다는 것에 고마우면서도 황태자의 희망대로는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질문이 황태자비 자질 테스트 질문으로 해석되며 사교계에서 얼마나 관심을 끌고 있는지 실감하지 못했고, 황후의 뜻과는 다를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마리아 황후가 좋아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적자인 황태자보다 인기가 높은 사생아가 먼저 시끌벅적하게 황실의 앞뜰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행복을 과시겠다는데.
그것에 대해 고민해 줬다는 황태자와 황태자비에겐 미안한 일이 되겠지만, 결국 아서와 자신이 끝내 사양하면 상황이 난처해서 그랬을 거라고 다들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
그리고 최종적으로 오늘, 혼나는 거라 생각하고 불려온 마리아 황후의 침전에서 뜻밖에 ‘눈치 홀덤사이트온라인홀덤 말고 수도에서 하라’ 말을 듣게 된 것이었다.
혹시 저를 신경 쓰느라 진행하지 않으려 했던 거라면 그러지 말아 달라 부탁하는 거예요.
제안에 가까운 형태였지만, 황실의 편찮으신 황후이자 곧 황태후가 되실 분께서 친히 말씀하시는데 홀덤사이트온라인홀덤 명분은 없었으니 사실상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레이나는 멍하니 황후를 바라보았다.
황후가 서글서글하게 웃었다.
“내가 하라고 했다면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테니까 그쪽은 걱정하지 말고.”
아서가 대답했다.
“예. 폐하.”
“…….”
이렇게 마주하니 알 수 있었다.
황후는 진심이었다.
마리아는 아서가 행복하게 결혼식을 올려 카일이 원하는 대로 뜻을 이루기를 바라고 있었다.
황후는 황제의 사생아에게 조금도 부정적 사감이 없었다.
황후가 너그럽다기보다는 황제의 외도 따위는 그녀에게 그만한 영향력을 가지지 못한 것으로 느껴졌다.
황후가 고려하는 대상은 카일뿐이었다.
“…….”
이젠 정말 수도에서 결혼식을 하게 생겼다.
‘조촐하게…… 할 수 있을까?’
황후가 인자하게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카일의 신뢰에 보답해 주세요. 잘해 줄 거라 믿어요. 무엇보다 두 사람이 많은 이들에게 축복을 받으며 행복하길 바라고요.”
아서가 미소 지었다.
“감사합니다.”
레이나는 비로소 남편의 얼굴을 확인했다.
아서가 마리아 황후 앞에서 저렇게 진심으로 보이는 미소를 지은 것은 처음 보는 것 같다.
“…….”
레이나도 결국 어쩔 수 없는 미소와 함께 예를 올리며 대답했다.
“황송합니다. 폐하. 부족하나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명령이라는데 어쩌겠나.
레이나도 이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어떻게 되겠지……. 아그네스 님과 이사벨 님, 마리나와 포드 경에게 상의해 봐야겠다.
“…….”
황후의 침전에서 물러나와 아서의 얼굴을 보니 비로소 긴장이 풀리며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런 상황은 신경 쓰지 말고. 우리 결혼식이잖아.’
“…….”
눈이 마주쳤다.
레이나가 웃으며 그의 팔 안쪽으로 살짝 손을 넣었다.
행진을 미리 하는 기분이 났다. 아서도 알아챘는지 웃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즐기자.
평생 한 번 있을 일일 텐데.
* * *
황후의 침실 겸 접견실 앞 복도.
아서와 레이나의 그림자가 사라진 뒤 두 젊은이가 기둥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됐네.”
“그러게.”
카일은 기분 좋게 미소 지으며 아멜리아와 손을 마주쳤다.
짝. 조용한 복도에 작게 소리가 났다.
카일은 피식 웃었다.
아서와 레이나의 얼굴이 보기 좋았다.
저렇게 좋은 얼굴 할 거면서 뭘 사양을 했어.
“고맙다.”
아멜리아가 어깨만 으쓱했다.
“그냥 뒀어도 오빠 뜻대로 됐을 거야. 난 등만 좀 떠민 거고.”
“그것도 필요했어. 너무 결정 시점이 늦어졌으면 결국 다른 일들에 밀려서 미뤄졌을 거야.”
아멜리아는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듯 웃었다.
아멜리아가 도와주겠다고 하자마자 모든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놀라운 건 그저 상관없는 우연으로 보이는 그 일들이 벌어지는 사이에서 아멜리아 포드의 흔적 따윈 조금도 나오지 않았다는 거였다.
신묘할 노릇이었다.
“왕녀한텐 어떻게 한 거야? 따로 접점이 있었어?”
“아, 그거?”
아멜리아가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그건 내가 뭐 한 거 아니야. 그냥 그분이 실수하신 거.”
카일은 눈을 크게 떴다.
“허. 진짜? 어머니 부름엔 그게 결정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멜리아가 아무것도 없지는 않았다는 듯 살짝 웃었다.
“내가 한 거라 봐야 가는 길에 떨어져 있던 동전을 주운 거 정도?”
그럼 그렇지. 카일이 고개를 내저었다.
“……동전을 줍는 것도 밑을 보고 허리를 굽혀야 하는 거라고 누가 그랬는데.”
“나야 밑을 보고 있었으니까. 동전을 보면 허리를 굽히는 거야 누구나 하는 거고.”
과연 그럴까.
어쨌든 카일로서는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아서와 레이나의 결혼식 이야기도 그렇지만, 황태자비 자질 테스트 질문은 딱 드러나는 정답자 없이 공중분해 되었다.
결혼할 아가씨 후보들이야 계속 만나야겠지만 그 테스트 질문을 이유로 황태자비가 결정되지는 않게 되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던 상태에서 시간을 조금 번 기분이 들기도 했다.
카일은 아멜리아가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 자체를 사교계에서 감추었다.
괜히 황태자비 유력 딱지 같은 것이 붙게 만들어 멀쩡한 친구 동생 앞날 막을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에 드는 분 있으면 그분이 제출한 정답이라고 포장해도 돼.”
아멜리아가 말했다. 카일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그럴 수는 없지. 네가 도와준 건데.”
딱히 누구 있지도 않고.
카일이 슬슬 몸을 일으켰다.
“갈까.”
카일과 아멜리아는 막 복도를 걸어가려다 움찔했다.
아무도 없던 황후궁 복도에 사람 그림자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둘 다 아는 사람이었다.
“헉, 아빠다.”
“!”
포드 재상.
카일은 아멜리아를 허락받고 데리고 나오지 않았다. 아멜리아는 창문으로 월담했다.
집순이인 아멜리아였지만, 자기가 기획한 일의 결과 정도는 보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쉿.”
카일이 아멜리아를 급히 벽에 박힌 기둥 뒤쪽으로 밀어 넣고 드레스의 치맛자락이 나오는 걸 밀어 넣어 감춰주며 후다닥 자신도 몸을 감추었다.
카일은 급하게 아멜리아를 밀어 넣으며 포드 경 쪽을 살폈다.
보일 것 같은데.
아멜리아가 숨을 멈췄다.
저벅저벅 하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
“…….”
꽤 오랜 시간이 걸려 포드 재상이 긴 복도를 걸어와 그들의 코앞까지 왔다.
그러고는 황후의 침전 앞으로 슥 방향을 바꾸어 노크했다.
“황후 폐하. 미카엘 포드입니다.”
“들어와요.”
안쪽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발소리, 다시 문이 닫혔다.
숨이 막혔던 아멜리아와 카일은 탁 숨을 내뱉었다.
“미안.”
카일이 거리를 벌리고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얼른 아멜리아의 손목을 잡아 부축했다.
“일단 자리 옮기자. 여기 있으면 안 되겠다.”
당황한 아멜리아의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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